20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 앙드레 지드의 [좁은 문] 가운데서 인용합니다.

“그리운 제롬, 나는 언제나 무한한 애정으로 너를 사랑해. 그러나 결코 네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어. 나 스스로 나의 입과 눈과 입술과 마음에 내린 구속이 너무 힘겨워서, 너와 헤어지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해방이고 쓰디쓴 만족이야.”

1909년에 발표된 앙드레 지드의 [좁은 문]은,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구절인 “좁은 문으로 들어가라”에서 땄다고 하는데요.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소설 전체에 흐르는 아름다운 서정과 섬세하고 정교한 심리묘사가 매혹적인 작품이지요.

“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젖어있었다. 이 순간이 나의 생애를 결정했다. 지금도 나는 고통 없이 그 순간을 떠올릴 수가 없다.”

제롬은 이렇게 울고 있는 알리사를 본 순간, 연민과 사랑을 느끼고, 알리사의 동생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.

“인생이 내게는 하나의 긴 여행처럼 생각돼. 알리사와 함께 책이며 사람들이며 나라들을 두루 거치며 경험하는 길고 긴 여행이 바로 인생이야.”

알리사 역시 제롬을 사랑하지요.

“제롬, 나는 이제 네가 있어야 참된 나일 수 있고, 또 그 이상 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.”

이런 고백도 하고요. 이런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합니다.

“책을 읽다 말고 문득 고개를 돌리곤 해. 네가 거기 서 잇는 것 같아서”

하지만 알리사는 그 사랑을 억누르며 제롬을 멀리하는데요.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, 제롬을 사랑하는 여동생의 대한 애정도 있었지만, 결국엔 그녀의 금욕주의 때문이었습니다.

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알리사에게 제롬은 이렇게 절규하지요.

“네가 없이는 난 거기에 이를 수 없어. 너 없이는 안돼. 너 없이 나는 안 돼”

결국 알리사는 고통스럽게 사랑과 싸우는 대신 죽음을 택하고, 그녀가 남긴 일기장에는 이런 기도가 씌어 있었습니다.

“한번만 그를 만나도록 해주시옵소서. 그의 이름을 입술에서 멀리 할 수도 제 마음의 괴로움을 잊어버릴 수도 없사옵니다.”

그토록 그리워하면서도 알리사는 왜 제롬과 함께 가는 길을 거부했을까요?

그녀가 택한 길은 너무나 좁아서 둘이서 나란히 걸어갈 수 없기 때문일까요?

사랑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런데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요.

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픈 사랑.

그래서 사랑은 슬픔과 이음동의어(異音同義語)일지도 모르겠습니다.

<KBS FM 1, 출발 FM과 함께, 2006년 6월 15일 방송>